퇴직 후


 


주마등(走馬燈)

"눈을 떴다 감으니 벌써 팔십이네"라는 어느 노인의
심오한 말이 올해처럼 비수에 꽂힌 적은 없다.


회사를 잘 다니던 내가 갑자기 퇴직을 했고,
벌써 한 달이 지나갔으니 말이다.
28년간의 직장생활이 마치 주마등처럼
눈앞을 스쳐 지나가는 것 같다.
퇴직은 마치 죽음처럼 누구에게나 확실하게 일어날
사건(Incident)이지만, 맞닥뜨리기 전까진
그것이 주는 의미를 절대 깨달을 수가 없는 것이다.

'내려올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보지 못한 그 꽃'

잘 나가거나 잘 나갈 때는 보이지 않던
소중한 뭔가가 인생의 반환점을 돌거나
인생의 큰 사건을 겪은 후에 보일 수 있다는 게
이 시가 말하고 싶은 것은 아닐까.


고은 시인의 시처럼 ‘퇴직’이라는 인생의
큰 사건을 겪은 후에 난 직장생활의 여정을
더 즐기지 못한 것이 큰 아쉬움으로 남았다.


직장생활이라는 등산에서 주변을 더 둘러보고,
챙겼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던 것 같다.
잠시 멈춰 서서 바라보기도 하고,
가까이 보면서 꽃들과 대화도 나누고,
쓰다듬어 주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꽃은 다시 보면 되는데 인간관계는 그렇지 않다.
올라갈 때 보지 못하면
그냥 그렇게 삶에서 사라지기 때문이다.


오랜 직장생활 동안 난 퇴직한 선배들로부터
"있을 때 잘해라"란 말을 수도 없이 들었다.
퇴직한 후에도 만날 수 있는
인간관계를 구축하라는 뼈 때리는 충고였다.

'업무는 공정하고 엄격하게,
관계는 끈끈하고 친밀하게'
라는

나만의 인간관계에 대한 개똥철학과 신념을 가지고
선배와 같은 몰락과 후회의 전철의 밟지 않겠노라고
몇 번이나 다짐하고, 끈끈한 관계를 맺으려고 나름 노력을 해왔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나의 적극적인 관계 구축에
대한 노력보다는 내가 오랜 기간 해왔던
인사 업무 경력과 배경, 그리고 고속 승진과
평판 등 운 좋은 나의 커리어 때문에
나를 따르는 직원들이 있었던 것뿐인데 말이다.
전형적인 '오만과 편견'의 태도였던 것 같다.





내가 재직 시절 나름 많은 공을 들이고,
친분을 만들었던 동료나 후배들의 경우 기대와 달리
인사치레 정도의 안부 전화가 다인 경우가 많았다.

반면 내가 소홀하게 대했거나 또는 이름도 잘 기억
안 나는 현직 또는 퇴직한 직원들의 격려와 응원의
전화가 의외로 많았다.
참 아이러니했다.
퇴직한 지 이제 겨우 한 달도 안 되었는데
난 직장 내 인간관계에 대한 무상(無常, 덧없음)의
감정이 맘속에 자리 잡기 시작했다.


이전엔 간도 쓸개도 빼줄 것처럼 내게 자주
안부 전화하고, 술자리도 만들고, 생일과
각종 기념일을 챙기던 직원들이 어느덧
썰물처럼 한꺼번에 빠져나가 버린 느낌이다.
이전에 '인맥도 관계도 애쓸 필요 없다'라는
글을 썼는데 막상 퇴직을 하고 나니
결국은 '상호성'의 원칙에서 모든 일이
돌아간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내가 더 이상 그들에게 줄 게 없다는 현실이
새삼 서글프게 느껴졌다.

이제부터는 직장을 떠나 새로운 인간관계와
인맥에 대해 다시 한 번 깊게 생각해 볼 시점이 된 것 같다.

누구나 알지만 막상 경험하게 되면 누구나 느끼는
그런 헛헛한 감정을 빨리 극복하는 것도 과제다.
물론 이전 직장에서 이어질 인연들은 더 소중하게 만들 것이다.

또한 앞으로는 이전의 직장을 떠나 새롭게
나의 가치와 영향력의 원을 만들어야 할 시점인 것 같다.

어쩌면 나처럼 그런 감정의 소용돌이를 겪은
동병상련의 사람들끼리 말이다.
아픔과 상처를 겪은 사람들끼리
더 깊은 이해와 성장을 함께 할 수 있지 않을까.

서로의 감정을 보듬고, 함께 아파할 수 있는
그런 관계를 만들어 가고 싶다.

이젠 평생 동안 함께 가야 할
관계를 만들어야 할 시점인 것 같다.
이해관계가 아닌 이타적인 관계,
받는 것보다는 주는 것이 행복한 관계,
내 행복과 불행을 함께 기뻐하고,
아파하는 그런 관계를 만들어가고 싶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정말 좋아하고,
함께 하고 싶은 사람들과 남은 인생을 보내고 싶다.
내 오랜 염원이다.


글 : 미스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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